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1

당동벌이(黨同伐異) ‘黨’이란 문자에는 ‘무리’라는 뜻도 있지만 거기서 전의(轉意)하여 ‘불편부당(不偏不黨)’처럼 ‘치우치다’ 또는 ‘서로 도와 나쁜 짓을 숨기다’라는 뜻도 갖는다. 군자부당(君子不黨: 군자는 의견이나 목적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도와 나쁜 짓을 하는 법이 아니다)이라는 孔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자에서 ‘당(黨)’은 결코 좋은 의미의 글자가 아니다. 요즘 관념으로야 정당(政黨)이란 바람직한 정치집단이고, 정당끼리의 다툼 또한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자문화권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당을 짓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일 뿐 아니라 당파간의 다툼 즉 당쟁은 나라를 망치는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색깔이 달라도 오로지 내세우는 제일의 가치는 ‘和’요 ‘안정’이다. 그러다보.. 2024. 3. 16.
적서차별(嫡庶差別) 중국의 전통사회는 봉건제도로 유지되었다고 우리는 배웠고, 실제 '봉건타도(封建打倒)'는 중국에서 20세기 내내 구시대를 청산하자는 상징적 구호였다. 하지만 중국은 청나라 때까지 봉건제도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며, 그런 구호는 왜 나오게 되었는가. 봉건제도란 인간관계를 主從(王과 臣)의 관계로 규정하여 질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王을 主로 삼으면 侯이하 나머지가 從(=臣)이 되고, 侯를 主로 하면 公卿 이하 나머지가 從(=臣), 公卿을 主로 삼으면 大夫이하 나머지가 從(=臣)이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만 보면 매우 불합리한 피라미드식 계급구조이다. 그러나 왕은 여러 후에게 특정한 땅(封土)을 지정해주면서 그 땅을 자손대대로 차지하게 하되 臣으로서의 의무만을 다하도록 약속받.. 2024. 3. 16.
명실상이(名實相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중국의 성어가 있다. 겉으로 표방하는 이름과 실제적인 내용이 서로 부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문화에는 명실상부가 아니라 겉과 속이 서로 다른, ‘명실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그러니까 명실상부라는 말은 중국문화가 만들어낸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반어인 셈이다. 명실상이라고 해서 중국인 개개인이나 중국문화 전반에 이중적인 성격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중적’이라면 ‘선과 악’ 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양자간의 대립과 갈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대립과 갈등을 빚는 상대성으로서의 명과 실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교묘한 조화를 이루는 안과 밖의 관계를 말한다. 예컨대 중국인들은 정작 A를 말하고자 하면서도 A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B를 말한다. 하지만 신기.. 2024. 3. 16.
복록영종(福祿永終) 오래 버티는 것이 확실한 승리요 유일한 소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생을 간고의 세월로만 보내야 한다면 그다지 살 맛이 나지는 않을 게다. 그래서 천장지구를 바란 다음에는 그 위에 반드시 추가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복과 록(우리말의 두음법칙이란 정말 무효하다. 당장 없애야 할 법칙이다)이다. 복과 록은 무엇인가? 오복(五福)이니 팔복(八福)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복이란 것이 마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원리처럼 착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복과 록’이란 ‘돈과 지위에 따른 각종 이득’ 외에 다름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복을 다섯 개쯤 차례로 주어 섬기고는 오복이라고 이름하고, 그것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아 세 개쯤 더 주어 섬기고는 팔복이라고 이름했을 뿐이지 그런 것이 무슨 원리.. 2024. 3. 16.
천장지구(天長地久) 언젠가 홍콩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이 말은 "詩經" 에도 나오고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 천지가 장구한들 다할 날이 있겠지만 이내 한은 이어이어 끊일 날이 없으리)에도 나오는 말이다. 백낙천의 이 시구에서 우리는, 중국인들은 자신의 목숨과 욕망이 천지가 다할 때까지 길이길이 이어지기 바라는 것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구절을 가지고 혹시 “중국인들은 천지도 끝나는 날이 있음을 짐작하는 대단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해석한다면 참으로 딱한 해석이 된다. 그런 해석은 마치 “안 보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할 수 있다”는 말을 가지고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는 안 보는 데서는 나라님을 욕.. 2024. 3. 16.
유학의 역사와 조선성리학 공자에게서 비롯한 유학이라는 학술체계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습과 성격이 바뀝니다. 가장 획기적인 바뀜은 漢의 무제가 유술(儒術)을 국교체제로 만든 것이고, 다음으로는 南宋의 주희가 유학을 리학(理學)이라는 체계로 재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학은 한무제 이후 관학(官學)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가 여러 종단으로 나뉘어 난만하게 발전하다가, 당왕조 무렵이면 중국의 사상계와 문화계를 장악해버립니다. 최종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종단은 중국화한 불교라고 할 수 있는 선종이지만, 교종으로 분류되는 천태종과 화엄종 등의 사유체계는 화이사상을 교조로 여기던 중국의 식자인들, 그러니까 유자들의 자존심을 건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랑캐의 종교가 중원을 휩쓴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다친 부류.. 2024. 3. 16.
조선 디아스포라 3 조봉학, 남, 1915년생 훈춘시 춘성향 고산촌 거주 나는 조선 함경북도 갑산군 운흥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집 뒤에는 산이 있었고 집 곁에는 배나무 한 대가 있었다. 그리고 산굴이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을 두구 이라고도 했고 이라고도 했다. 이라고 한 건 삼을 굽는 구뎅이를 우리 집 곁에다 만들어 놓았다고 그렇게 불렀다. 그때 토스레를 입기 위해 베를 짜는데 쓸 삼을 집집이 심었댔다. 삼을 거둔 다음 구뎅이에 가져다 구뎅이의 한쪽 칸에 돌을 가득 넣어서 부엌을 만들고 다른 한쪽 칸에 삼을 놓고 삼찌기를 넣어서 불을 일궈 돌을 달구었다. 돌이 세게 단 다음 우를 콱 묻어놓고 구멍을 파고 모두 모여들어 녀자들은 물동이로, 남자들은 바게쯔로 물을 길어다 세게 단 돌 우에 콱 뿌렸다. 그러면 김이 삼무지에.. 2024. 3. 16.
조선 디아스포라 2 한희운, 남, 1918년생 길림성 돈화시 흑석향 경독촌 거주 나는 조선 경상북도 의성군 의연동에서 태여났다. 그때 우리 집 살림은 워낙 먹고 쓸만했는데 부친이 술 마시느라구 그만 토지를 팔아먹고 집을 팔아먹고 하는 바람에 구차하게 되였다. 부친은 술 한 동이를 지고 가라면 못 가도 마시고 가라면 마시고 가는 량반이였다. 나는 11살부터 일본사람 집에서 소를 먹여주면서 일 년에 그때 돈으로 15원 씩 받았는데 식솔이 많아 그 돈으로는 안 되였다. 14살까지 소를 먹이고 15살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이태 동안 하다가 그래도 안돼서 어머니하고 만주 땅에서는 농사를 마음대로 짓고 배불리 먹는다는데 한번 가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선뜻 동의하면서 부친에게 알리지 말고 가만히 가자고 했다. 하여 밤중에 누구도 모르.. 2024. 3. 16.
조선 디아스포라 1 조선족 공동체 사이트에 실린 글 하나 소개합니다. 맞춤법은 일부러 맞추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국인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고 제법 자랑하는데, 조상의 失政 때문에 외지로 떠돌아야 했던 우리 동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족이민실록] 김정록 가족(길림성 돈화시) 김정록, 남,1908년생. 길림성 돈화시 흑석향 경독촌 거주 내 나이는 80이여도 태생은 중국태생이다. 우리 고향은 함경북도 정성군이라는 데구 나는 룡정 동해라는 데 있는 샘뚝마을에서 태여났다. 우리 집이 조선에서 건너오기는 부친이 6살 때 건너왔다. 부친이 지금 계시면 106살이니깐 딱 건너온 지 100년이 된다. 조선에서 건너온 건 생활이 하두 구차해서 할아버지,할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구 왔다. 기차라는 게 없을 때.. 2024. 3. 16.
서울대 의대는 영어권 대학의 분교? 서울대 의대 본관 명패 사진입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고 하면, 아마도 과거 이완용이 일본과의 합방을 추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극 노력할 사람들이 바로 이 나라 최고 엘리트로 자부하는 이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완용은 당시 가장 선진적인 글로벌리스트였습니다. 자신이 매국을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세상의 추이를 짐작하지 못할 따름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 왜 '믿음'들의 격돌이 일상화하는 나라인지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꼽겠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상식조차 외면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엘리트층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앞세우면 상식도 외면하게 됩니다. 국내외 다른 대학들 명.. 2024. 3. 16.
공자는 사상가? 철학자? 공자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철학이라면 우주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탐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사상이라면 논리적 정합성을 지닌 어떤 통일된 판단 체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에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공자의 단편적인 언설들을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는 일이야 가능하지만, 공자를 철학자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철학자이니 사상가이니 하는 잣대는 사실 근대적인 잣대입니다. 2천5백년 전의 공자를 근대의 잣대를 가지고 규정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자를 사상가나 철학자로 보고자 할까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중체서용의 입장에서 서양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양무(洋務)운동을 일으킵니다. 서양의 기술이 우수함은 인정하지만 체제만큼은 중국의 것이.. 2024. 1. 29.
공자는 어쩌다 聖人이 되었을까? 공자는 애당초 성인(聖人) 반열에 오르고자 꿈꾸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소크라테스나 싯다르타처럼 사유를 통해 인간사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자 애썼던 사람도 아닙니다. ‘인권’이란 것에 주목하거나, 인간을 질적으로 제고시키려는 ‘교육’에 열의를 보였던 사람도 아닙니다. 공자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정치 지망생이었습니다. 바른 정치를 향한 그의 염원은 제자들과 공동체를 꾸리도록 만들었고, 그 공동체 안에서 행해진 수업은 공자의 꿈을 펼치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스승이 죽은 뒤 제자들은 매체를 활용하여 스승의 유지를 확대하고자 했고, 그 결과 공자의 사상은 보존되어 마침내 제왕들까지 움직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聖人이라는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 2024. 1. 29.
‘보탬이 됨’, ‘쓸모 있음’으로 번역되는 利는 한자문화권에서 단연 최고의 가치입니다. 다만 利는 ‘쓸모 있음’(Utility)으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쾌락과 행복만을 진정한 가치로 여기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릅니다. ‘利’가 칼로 곡물을 수확하는 모습에서 만들어진 글자임을 보더라도, 利는 구체적인 효용을 가리킬 뿐 쾌락이니 행복이니 하는 추상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논어』에 보이는 공자 사유의 토대도 實利(실제적인 보탬)와 實用(실제적인 쓰임)입니다. 공자는 정치에 종사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因民之所利而利之”(인민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만들어줌)(20·02)하라고 강조합니다. 정치의 대원칙은 바로 그것이라는 가르침이지요. 다만 공자는 .. 2024. 1. 29.
公과 私 현대 한국인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합당한 가치관을 지향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체제 가치관도 여전히 안고서 살아갑니다. 두 가치관은 종당에 모순을 빚을 수밖에 없지만, 아직 모순이 크게 노출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갈등이 노골화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노골적인 충돌은 자제하는 관습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두 가치관이 어떻게 모순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모순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장차 큰 위험이 닥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주동적으로 설계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순 가운데 두드러진 것으로는 ‘공(公)/사(私)’에 관한 관념입니다. 요즘 한국인은 ‘공/사’를 ‘public/priv.. 2024. 1. 29.
‘文’이라는 글자는 공자와 유학을 상징하는 브랜드처럼 사용되는 문자입니다. 모양이 단순할 뿐 아니라, 공자가 숭상했던 최고의 가치가 文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君子·仁·義·禮·知 등의 덕목을 강조했는데, 그 덕목들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그는 文이라는 한 글자에 담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추구하고 또 자신이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文에 斯라는 관사를 붙여 ‘사문(斯文)’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文이라는 글자는 문자(文字), 문화(文化), 문명(文明) 등 휴매니티 전반을 상징하는 캐릭터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공자의 평생 테마는 오직 정치뿐이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공자에게 文은 일차적으로 ‘지속 가능한 비폭력적 통치권력’이었습니다. ‘崇文賤武’(숭문천무:文을 숭상하고 武를 천시함).. 2024. 1. 29.
孝는 忠과 더불어 유교체제를 받치는 두 기둥 역할을 해온 덕목입니다. 孝라는 글자의 뜻은 ‘마음 다해 부모를 모시고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가족윤리입니다. 유교체제 왕조를 떠받치는 기둥이 가족윤리라는 것은 유교체제가 씨족사회 윤리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孝에 대한 공자의 생각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논어』에서 孝는 仁이나 義보다는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편입니다. 그것은 孝를 관념적인 덕목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일러주어야 하는 행동양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논어』에서 孝는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①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고, 부모가 병환이 날까 걱정하는 마음(2·06) ②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일(2·07) ③힘든 일을 대신하거나 음식을 .. 2024. 1. 29.
이 글자는 원래 ‘마음을 다하는 태도’, ‘자기를 속이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추상 영역이 아닌 감성 영역을 표현하는 말로서, 경(敬)과 비슷한 뜻이었습니다. 『논어』에 ‘충신(忠信)’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1·08, 5·27, 7·25, 9·25, 12·10, 15·06) 공자는 忠이라는 태도가 信(미덥다)이라는 태도와 짝한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속이지 않는 태도와 남을 속이지 않는 태도를 아울러 강조하고자 忠과 信을 아울러 언급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스승님의 방법론은 충서 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4·15)라는 문장에서, 일반적으로 忠은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가리키고 恕는 남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가리킨다고 설명됩니다. “.. 2024. 1. 29.
德은 요즘 도덕적 품행이나 바람직한 인격을 가리키는 낱말로 쓰입니다. ‘덕이 있다’, ‘덕을 갖추었다’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virtue’의 번역어로 쓰이게 된 이후로는 ‘탁월한 도덕’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교체제 왕조에서 德의 의미는 요즘의 그런 의미들과는 꽤 차이가 있습니다. 갑골문에서 ‘德’ 자는 ‘行’ 자의 중간에 ‘目’ 자가 가로로 누운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行’은 발로 움직이는 동작을 가리키므로, 그 이미지는 ‘올라가다(升)’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것은 뭔가 얻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얻다’(得)라는 뜻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덕이 되다’라는 말은 곧 ‘득이 되다’라는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나아가 ‘얻게 되도록 만들어주는 행위나 힘’이라는 뜻도 지니게.. 2024. 1. 29.
공자는 제자들에게 仁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仁을 완성하자면 禮와 樂(악)이라는 두 가지 수단이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례와 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이렇듯 기준만 제시하는 사람이었지 기준의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내용을 파악하여 익히는 일은 온전히 배우는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후대 학자들의 몫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禮와 樂은 무엇이며, 어떻게 仁을 완성하는 수단이 될까요? 樂은 당연히 음악이겠지요. 그런데 음악이란 것은 문헌으로 남길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글로써 樂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한계가 빤할 뿐 아니라 맛도 없습니다. 그래서 樂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禮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 2024. 1. 29.
君子 유가의 사상은 당연히 공자의 사유체계를 이어받아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면 공자의 사유체계는 어떤 내용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통치술에 대한 구상입니다. 나라는 어떻게 통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도 옳은지, 어떤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 가장 나은지에 대한 모색이 그 줄기입니다. 통치술에 대한 공자의 구상은 『논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논어』 전편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런 사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라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런 사람’을 ‘君子’라고 부르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처신해야 군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평생 언급하였습니다. 우선 ‘君子’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통치자를 가리키는 ‘尹’과, 호령(號令)을 뜻하는 ‘口’를 합한 글자인 ‘君’ 자는 원래 군주를.. 2024. 1. 29.
인(仁)이란 무엇인가? 우주의 구조가 하늘과 땅으로 나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의 구조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다는 것이 공자 사유체계의 기본 틀입니다. 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듯이, 인간세상도 군주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움직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군주의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天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연결시킵니다. 물론 그러한 구상은 순전히 공자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내려오던 관념들을 정리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공자의 사유체계는 이렇듯이 군주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구조와 위계질서에 대한 사유체계입니다. 권력은 자기보다 아래의 서열을 결정하는 힘을 가리키고, 그 힘이 위에서 아래로 행사되도록 짜인 구도를 위계질서라고 합니다. 권력이 위계질서에 따라 매끄럽게 행사되는 것을 .. 2022. 3. 20.
너는 안 끼워줘 ! 너는 안 끼워줘 ! 아이들이 가끔 쓰는 말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살리자면, 주로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아이가 곧잘 쓰는 말이었다. 그 말의 위력만으로 상황이 끝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태가 시끄럽게 바뀐다. 어느 한 쪽이 코피 터지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은 대체로 그런 말이 도화선이었을 때였다. 푸틴이 말썽을 부린다. 미국과 서방은 일방적으로 푸틴과 러시아를 매도한다. 전쟁의 양상을 보자면 매도당할 만한 짓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푸틴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 독재자의 미치광이 짓이라고 말해버리면 심플하다. 그러나 저 독재자는 애당초 러시아를 NATO에 가입시켜 달라고 요청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유럽, 정확히는 미국은 푸틴의 요청에 “너는 안 끼워줘!”라고 대답하였다.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 2022. 3. 16.
중용(中庸)이란 무엇인가? 유교의 최고 덕목이 뭐냐는 물음에는 대개 ‘仁’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런데 ‘중용’을 꼽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리학(성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겁니다. 또한 유교의 ‘중용’을 불교의 ‘중도’(中道)와 견줄만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중용’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중시될까요? 중용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공자가 말한 적은 없습니다. 공자는 “中庸之爲德也其至矣乎 民鮮久矣”(중용하는 것이 덕이 됨은 더할 나위 없는데도, 그런 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단 말이야)(「옹야」편 제29장)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공자가 말한 중용은 불교의 ‘중도’(中道)처럼 추상적 관념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처신하는 태도.. 2021. 12. 15.
知(지)를 아는가? 유자들은 공자가 仁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공자는 仁만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자는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분별력은 미혹하지 않게 만들고, 인은 근심하지 않게 만들며,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9·29)라는 표현을 거듭합니다. 그 표현은 지자, 인자, 용자라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군자는 知, 仁, 勇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강조입니다. 공자는 知가 없는 仁은 무익하고, 知가 없는 勇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유자들은 공자가 仁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고 여길까요? 그건 한문의 문장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교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관념에 대해서조차 뭐가 더 높은지 서열을 의식하여 해석하기 때.. 2021. 11. 24.
義란 무엇인가? 유교체제에서는 仁 못지않게 義라는 덕목이 강조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justice’가 ‘정의(正義)’로 번역되는 바람에 유교체제에서의 義에 대한 뜻이 약간 왜곡된 느낌이 있습니다. 유교체제에서 ‘義’의 뜻은 요즘 ‘정의(正義,justice)’의 뜻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유교체제에서의 義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義’ 자의 본뜻은 ‘옳음’입니다. ‘그름(非)’의 반대어인 ‘옳음(是)’이 아니라, ‘합당하다’라는 뜻의 ‘옳음’입니다. 예컨대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라는 『논어』의 문장은 “약속도 합당해야 실천될 수 있고, 공손함도 예법에 맞아야 모욕당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義’ 자는 ‘宜’(의:마땅함) 자와 근원이 같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교 경서라고 할 수 있는 『상서』.. 2021. 10. 12.
士(선비)란 무엇인가? 사(士)를 한국어로는 대개 ‘선비’라고 번역합니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독서인’이나 ‘교양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어 ‘선비’는 학식과 고결한 인품을 아울러 갖춘 사람을 가리키지만, 중국사에서 ‘士’의 의미범주는 그것과는 꽤 다릅니다. 士는 유교체제가 갖추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공자도 널리 사용했던 이름입니다. 士를 ‘선비’로 번역하면 文에 치우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공자 시대 士의 의미나 역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士의 성격이 계몽주의 이후에 등장하는 ‘인텔리겐차’와 같다는 견해도 있지만, 인텔리겐차는 실천에 중점을 둔 지식인이라는 뜻이므로 역시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 역사에서 광범위하게 일컬어졌던 ‘士’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낱말일까요? ‘군자’가 공자가 지향하는.. 2021. 10. 10.
學이란 무엇인가? 군자·인·의·례·지·신 등 『논어』의 핵심어들은 모두 ‘學’이라는 글자로 총괄됩니다. 學이라는 글자에 군자·인·의·례·지·신에 대한 개념이 들어있다는 뜻이 아니라, 공자는 그 어떤 덕목이든 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백가 가운데 유가가 최종적으로 패권을 확보하게 된 배경도 學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學을 중시했기 때문에 유가는 문헌을 보전할 수 있었고, 문헌을 장악했기 때문에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學’ 자의 원래 뜻은 ‘본받다’라는 뜻입니다. 한국어 새김인 ‘배우다’라는 말도 원래는 ‘본받다’라는 뜻입니다. ‘본받다’라는 말은 따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공자는 ‘본받기’, ‘따라하기’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요즘의 ‘공부하기’와는 당연히 다.. 2021. 10. 1.
道란 무엇인가? 道는 동아시아 사상사와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한 글자입니다. 유가뿐 아니라 제자백가도 모두 道를 말하였고, 道를 좇아 살아야 한다는 도교(道敎)라는 종교교단도 만들어졌으며,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조차 붇다를 道를 얻은 사람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여러 방면에서도 書道니 茶道니 하면서 곧잘 道를 내세웠습니다. 이처럼 道는 동아시아 문화사와 사상사에서 다양하고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유효한 방법론’ 또는 ‘벗어나서는 안 되는 방법론’이라는 개념을 ‘길’이라는 일반명사로써 은유하는 일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道라는 글자는 은유를 넘어 깊은 의미가 담긴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곤 합니다. 중국 바깥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컨대 벤자민 슈워츠는.. 2021. 10. 1.
天이란 무엇인가? 유교체제란 유교라는 종교를 축으로 삼아 편성된 국가체제라는 뜻입니다. 종교라는 말의 뜻이 ‘으뜸 가르침’이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유교의 으뜸 가르침은 어떤 내용일까요? 유교라는 가르침은 天에 대한 관념이 중심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天은 무엇일까요? 하늘이라는 공간? 해와 달과 별들이 움직이는 천체? 天이라는 글자는 갑골문부터 서주시대 금문까지 ‘大’ 자 위에 커다란 동그라미나 네모 또는 가로줄을 그은 모습의 이미지 부호였습니다. 그것들은 커다랗고 특별한 어떤 ‘존재’를 상징하는 기호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왕의 다른 현존’ 즉, 왕이 죽은 다음 존재하는 형식을 의미했습니다. 왕의 권능에 가장 확실한 위협은 죽음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의 권능도 사라진다고 느낀 왕은 두려웠습니다. 늙어 죽더라도 .. 2021. 9. 17.
자정에 여는 북한의 열병식 2021년 9월 9일 0시, 북한은 정권수립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과 경축 행사를 벌였다. 남쪽에서는 “대미·대남 위협용 신무기를 공개할 수 있다는 관측을 뒤집고 민간이 중심이 된 열병식을 연 것은 내부 결속 의지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하면서, 북한이 당분간 대외 이슈보다는 내부 이슈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국가의 열병식을 자정에 연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군대를 밤에 잠도 재우지 않고 이동시킨다는 것이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자정에 광장에서 떼춤 추고 불꽃놀이 하겠는가? 그것도 1년 안에 세 번씩이나. 그것을 두고 ‘축제 분위기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만 풀이.. 2021.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