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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

공자는 사상가? 철학자?

by 曺明和 2024. 1. 29.

공자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철학이라면 우주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탐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사상이라면 논리적 정합성을 지닌 어떤 통일된 판단 체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에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공자의 단편적인 언설들을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는 일이야 가능하지만, 공자를 철학자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철학자이니 사상가이니 하는 잣대는 사실 근대적인 잣대입니다. 25백년 전의 공자를 근대의 잣대를 가지고 규정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자를 사상가나 철학자로 보고자 할까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중체서용의 입장에서 서양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양무(洋務)운동을 일으킵니다. 서양의 기술이 우수함은 인정하지만 체제만큼은 중국의 것이 우월함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서양의 군함을 도입하고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와 전쟁을 치러보니까, 그 동안 서양의 것을 도입한 것이 아무런 실효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이에 강유위(康有爲,1858~1927) 등 식자인들은 방향을 돌립니다. 서양의 기술은 제도나 법, 사상과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런 것에 치중해야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제도와 법을 서양의 것으로 바꾸고자 그들은 정권의 한 축과 손잡고 변법자강운동이라는 혁명을 일으키는데, 정권의 뒷받침이 부족하여 백일만에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법과 제도의 개편, 그리고 그것의 토대가 되는 사상과 철학을 탐구해야 한다는 견해는 지식인 사이에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중국은 지금까지 서양을 누를 수 있는 국력의 회복에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오랑캐로 여기던 서구와 일본에게 짓밟힌 천조(天朝)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은 국가적 염원이 됩니다.

한편 중국의 식자인들은, 중국의 문화사에는 서양의 것과 비슷한 법 제도 사상 철학은 없었는지도 찾게 됩니다. 이윽고 춘추시대에 등장했던 제자백가가 그리스 철학자들과 견줄 만하다고 단정하게 됩니다. 시기마저 비슷하니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후 공자를 철학가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하게 되고, 백가의 제자들도 일거에 철학자의 반열로 올라갑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문제의식 위에 성립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공자에게는 문제의식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공자는 의문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표준은 성인들이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그 표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는 좋은 권력과 나쁜 권력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좋음이란 무엇이고 나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한 적이 없습니다. 사회구조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구조에 대해 회의해본 적이 없습니다. 존재론적 의문이나 인식론적 분별에 유의한 적도 없습니다. 공자에게 모든 것은 확실했을 뿐입니다. 확실한 것을 바탕으로 훈시만 했지 불확실한 것에 대해 의문한 적이 없습니다. 인생은 확실한 것을 다루거나 향유하기에도 바쁘거늘, 불확실한 것을 탐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모든 문제를,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런 공자를 철학자로 간주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논어를 윤리서로 볼 수는 있을망정 철학서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정은 백가의 제자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학자들은 논어를 철학서로 규정하고자 무척 노력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자의 위상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공자라는 인물을 굳이 근대 서구의 표준에 맞추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양철학과 비슷한 것이 중국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자의 철학이란 것이 불가하다면, ‘공자의 사상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이라고들 말합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은 인간 중심의 사상이니까, 공자는 인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이라는 것은 통일되게 정리된 사유 틀을 가리킵니다. 공자가 을 강조했다 해서 공자의 사상은 사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더구나 그는 을 보편 인간에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소양으로만 강조하였습니다. ‘공자의 사상이라고 제시하려면 그의 발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공자는 천하를 하나의 질서로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공자의 사상은 바로 그러한 신념체계입니다. 공자의 그러한 신념체계는 통일제국 이 치국이념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보편화합니다. 통일된 천하의 안정된 모습,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인의 이념이라고 할만 것입니다. 요즘 중국이 부르짖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슬로건도 바로 세계를 하나로 잇겠다는, 하나의 가치로 연결하겠다는, 황당한 꿈입니다.

 

공자의 그러한 사상은 현대의 전체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개별 인간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하지 않는 사상입니다. 공자에게 개별 인간은 주체적 자아를 지닌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조각()’일 뿐입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도 가정이라는 집체였지 인간 개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질서 잡힌 천하만을 꿈꾸었지 개인의 창달이나 행복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권리라는 것에는 생각조차 미치지 않았습니다. 개인은 역할과 책임만이 요구되는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든가, 주권을 갖는다든가 하는 생각은 사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커진 관념입니다.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존재들이고, 각각 신에게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생각을 보급하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을 본질적인 개체이면서 영생하고자 하는 존재로 여기는 환경에서는 나의 권리라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가의 이상이 전체를 위한다고 해서 개인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의무와 역할은 매우 강조됩니다. 분수대로 살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복락을 누리려는 개인의 욕망은 존중됩니다. (이로움, 보탬이 됨)에 대한 추구는 무조건 인정됩니다.

 

개인에 대한 관념이 그러하니, 개인 사이의 횡적인 교류나 공감에 대한 생각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개인에게 중요한 관계망이라곤 오로지 상위 계급과의 관계망, 위를 향한 수직적인 관계망뿐이었습니다. 대등한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망이란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지위가 같다면 나이로라도 위아래를 구분하는 것이 질서였습니다. 개인의 고통일랑 지배자의 시혜를 통해서 위로받으면 되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간절하게 복을 비는 일뿐이었습니다. 기복종교가 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들은 복종하면 구원해준다는 약속, 업이 다할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는 설득 외에 기댈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업에 따라 윤회하는 것이라는 설득은 피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세뇌가 아닐 수 없고, 믿으면 구원해준다는 약속은 자발적 종속을 유도하는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자문화권 고유의 종교(=으뜸 가르침)체계로는 음양설을 바탕으로 하는 ()’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해와 달처럼 서로 갈마드는 것이다, 괴로움이 끝나면 즐거움은 오게 된다, 모든 것은 계절처럼 순환한다, 이런 사유체계가 곧 역경(易經)이라는 책으로 정리된 사상입니다.

 

공자의 사상은 공자가 처음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대륙에 강력한 전제권력이 자리 잡은 지는 무척 오래고, 전제권력을 차지한 왕은 그 권력을 영속할 방안에 대해 고심했을 것이며, 그런 가운데 그런 사유 틀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런 사유 틀을 세밀하게 체계화하여 지배층을 포함한 전체 인민에게 체화시키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사상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치사상입니다. 그 사상의 핵심은 당연히 권력입니다. 권력은 천()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을 받들어 제사를 모시는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의례, 이런 것들을 체계화한 것이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모택동이 공자를 숭배할 리가 없었지요. 모택동은 공자를 자신이 미워했던 림표와 싸잡아서 批林批孔운동을 벌이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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