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체제에서는 仁 못지않게 義라는 덕목이 강조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justice’가 ‘정의(正義)’로 번역되는 바람에 유교체제에서의 義에 대한 뜻이 약간 왜곡된 느낌이 있습니다. 유교체제에서 ‘義’의 뜻은 요즘 ‘정의(正義,justice)’의 뜻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유교체제에서의 義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義’ 자의 본뜻은 ‘옳음’입니다. ‘그름(非)’의 반대어인 ‘옳음(是)’이 아니라, ‘합당하다’라는 뜻의 ‘옳음’입니다. 예컨대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라는 『논어』의 문장은 “약속도 합당해야 실천될 수 있고, 공손함도 예법에 맞아야 모욕당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義’ 자는 ‘宜’(의:마땅함) 자와 근원이 같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교 경서라고 할 수 있는 『상서』에는 “以義制事 以禮制心”(일에 대한 통제는 義를 가지고, 마음에 대한 통제는 禮를 가지고)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義는 일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禮는 마음을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義를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는 행위의 정당함과 아울러 책임까지 포함하는 도덕관념으로서 義를 강조하였습니다.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는 의를 밝히고 소인은 리를 밝힌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문장에서 利는 개인의 이익을 가리키고, 義는 모두의 이익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 아니면 개인에게만 이로운 것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義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처럼 실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관념을 결코 실리보다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부정했을 뿐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는 당연히 긍정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는 실천 목표를 義라고 제시한 것입니다. 올바름으로서의 ‘도리’와 마땅함으로서의 ‘당위’,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가치’를 義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義는 대체로 ‘모두의 이익에 합당한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모두에게 이로운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공자는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 지점부터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질이 아닌 가치를 가리킨 것은 분명한데,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없습니다. 공자는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義의 기준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시대에 공유하는 가치는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가의 질서를 따르는 것입니다. 국가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은 곧 국가의 질서를 주관하는 군주를 따른다는 뜻입니다. 최고 권력인 군주를 거스르는 것을 가장 큰 不義로 여겼던 것입니다. 서구의 ‘justice’라는 낱말에도 역사적으로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유교체제에서 義와 不義를 가르는 기준이 군주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군주에게 충성하는 것이 義이자 公이고, 군주에게 불충하는 것은 不義이자 私로 규정되었습니다. 문자학적으로 ‘義’ 자는 ‘殺’ 자에서 나왔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義’ 자의 본래의 뜻은 죽어야 할 합당한 이유를 밝히면서 죽인다는 뜻이었다는 견해입니다. ‘마땅함’이라는 뜻은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義의 본질은 외재적인 강제성과 권위이지 내재적인 태도나 정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義는 理(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는 뜻의 이치)나 當(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라는 뜻의 당위)의 뜻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공자는 義를 仁만큼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자들이 義를 仁의 하위개념쯤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맹자는 義를 도덕적 실천의지로서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所爲(하는 바)와 所不爲(하지 않는 바)’, ‘所欲(바라는 바)과 所不欲(바라지 않는 바)’을 분별하는 기준이 義라면서, 義를 실천하는 목적은 ‘與人爲善(남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버려서라도 취해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습니다. “生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義도 내가 바라는 바인데, 두 가지를 겸할 수 없다면 生을 버리고 義를 취한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말했습니다. 맹자가 義를 이처럼 강조한 것은 묵가의 임협(任俠)적인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하지만 묵자는 義(옳음)와 不義(그름)의 기준을 利(보탬이 됨)와 害(해로움)로써 판단하는 결과주의적 입장을 보입니다. 그래서 묵자는 興利除害(이익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없앰)를 주장합니다.
맹자 이후 유가에서는 군주와 신하 사이의 도리로 충의(忠義)라는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군신관계 유대 수단으로는 忠義가 강조되었고, 향촌이나 동족집단의 유대 수단으로는 仁義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군주에게는 더없이 좋은 덕목이었을 겁니다.
위진(魏晉)시대에 이르면 새로운 설명도 나오게 됩니다. 신하는 일방적으로 주군에게 忠해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고, 주군에게서 받은 恩을 갚는 것이 義라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그런 해석 역시 군과 신의 관계를 임협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이처럼 군신관계를 임협적으로 여기는 관념은 무인정권이 지속되었던 일본에서 특히 오래도록 유지됩니다.
이후 ‘義’ 자의 뜻은 더 확장됩니다. 북송 때 동족 내의 곤궁한 사람을 돕기 위해 유력자의 기부에 의해 운영되는 농지를 의전(義田) 또는 의장(義莊)이라고 불렀습니다. 義兵이라는 낱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더 확장되어 ‘義手’니 ‘義足’이니 하는 낱말도 만들어집니다.
유가의 경전들은 대체로 순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가의 이론 또한 맹자를 거쳐 순자에 이르러 정립된 것으로 봅니다. 예컨대 순자는 ‘禮의 표현수단은 文이고, 義의 표현수단은 理’라고 말합니다. 『상서』에서부터 나타난 義를 ‘옳은 것’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규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견해입니다.
순자는 ‘分’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신분질서를 ‘옳은 것’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힘은 소만 못하고 달리는 능력은 말만 못한데도 사람이 소나 말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은 무리를 짓고 우마는 무리를 지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무리를 지을 줄 알게 되었는가. 직분을 나누기 때문이다. 직분은 어떻게 해서 실행될 수 있는가. 합당함 때문이다. 합당함으로써 직분을 나누면 화합하게 되고, 화합을 하면 하나가 되며, 하나가 되면 힘이 세지고, 힘이 세지면 강해지며, 강해지면 만물을 다룰 수 있게 되어 집을 만들어서 살게 된다. 그러므로 네 계절을 따르고, 만물을 마름질하며,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합당한 직분들을 각자 얻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집체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집체생활을 하면서 직분이 없으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亂의 상태가 되며, 亂의 상태가 되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흩어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만물을 다룰 수 없게 되어 집을 짓고 살 수가 없게 된다.”
순자의 이런 이론은 이후 2천년 넘도록 유교체제 왕조들의 통치질서가 됩니다. 남송대 리학자들에 의해 더욱 다져지기도 합니다. 전제군주에게는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이론으로 굳어진 것이지요. 다만 그가 강조한 分은 요즘의 분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공자는 유토피아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자 道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리드하고 통제하고자 道를 말했을 뿐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목적은 자신이 생각하는 질서, 곧 군주를 중심으로 한 질서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道를 행하는 것이 義(옳음)요, 義(옳음)란 곧 道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듯 道와 義는 군주를 중심으로 한 통치질서를 위한 관념이지 철학적 성찰에서 비롯한 관념이 아닙니다. 리학자들은 법칙성을 강조하고자 義에 道와 理를 추가하여 道義니 義理니 하는 합성어를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義俠이니, 義憤이니, 義士니 하는 합성어들을 만듦으로써 義는 유교사회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테제가 됩니다. 군자/소인, 義理/人情 등 다양한 주제와 연계되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理나 義를 날카롭게 벼리면 벼릴수록 그 사회는 살벌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의 梁得中(1665~1742)이 ‘以義理而亂天下(의리라는 것을 가지고 천하를 어지럽힘)’라고 비판하거나, 淸의 戴震(1724~1777)이 ‘以理殺人(리 가지고 사람을 죽임)’이라고 비판한 것은 그런 상황에 대한 고발입니다. 도덕이 모든 분야를 압도하는 사회에서는 잔혹한 병폐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義理(ぎ‐り)에 대한 강조가 보편화하여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라는 일반명사로 사용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를 의리라고 부릅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인의 문화적 문법을 해부한 『국화와 칼』에서 “세상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상대나 주위라고 하는 외면으로부터의 평가를 윤리의 기본에 두는 ‘부끄러움의 문화’가 바로 일본인의 義理이다.”라고 한 것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의리를 중시하는 덕목을 요구하고, 의리를 상실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가 일본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보다 보은이나 신의를 관철하는 것을 義理로 여기는 사회입니다. 특히 武士에게 있어서 義理는 목숨보다 무거운 일종의 강박관념입니다. 그래서 義兄弟와 같은 낱말도 만들어집니다. 일본인들은 義理에 반하는 감정을 人情(human emotion or compassion)이라고 부르는데, 용인할 수 없는 파트너(하급사회의 누구, 또는 적의 일족 가운데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 무사의 갈등과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義라는 글자의 뜻은 위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구문화의 ‘justice’를 ‘義/正義’로 번역하게 된 이후, ‘義’ 자에는 새 개념이 더 얹어졌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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