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아시아 문화

중용(中庸)이란 무엇인가?

by 曺明和 2021. 12. 15.

유교의 최고 덕목이 뭐냐는 물음에는 대개 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런데 중용을 꼽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리학(성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겁니다. 또한 유교의 중용을 불교의 중도’(中道)와 견줄만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중용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중시될까요?

중용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공자가 말한 적은 없습니다. 공자는 中庸之爲德也其至矣乎 民鮮久矣”(중용하는 것이 덕이 됨은 더할 나위 없는데도, 그런 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단 말이야)(옹야편 제29)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공자가 말한 중용은 불교의 중도’(中道)처럼 추상적 관념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처신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하고 하라라는 권유의 말로 보면 됩니다.

그러면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이고,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중간이라는 공간적 위치를 가리키는 뜻 말고도 치우치지 않음’, ‘과부족 없이 알맞음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라는 말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택하기 쉬운 위치에 있으라는 뜻입니다. 선명한 태도를 취하면 불리하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라는 글자는 평범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하라는 요구는 특출하고자 하지 말고 평범하게 처신하라는 뜻입니다. 특출함은 지속하기도 어렵고 도리어 질시나 위험이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하고 하라는 권유는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특출하고자 하지 말라는 권유입니다. ‘中庸하는 처신이 덕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란 곧 입니다. 보탬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말은 중하고 용하는 처신이야말로 가장 보탬이 되는 처신이라는 뜻입니다. ‘民鮮久矣라는 말은, 그런 처신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탄식입니다.

공자의 말은 세상 환경이란 늘 바뀌므로,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있으면 바뀌는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야 바뀌는 상황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다. 또한 특별한 것은 특정한 때 특정한 환경에서만 좋은 것일 뿐 세월이 바뀌면 이내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가장 오랫동안 보탬이 되는 처신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게 지내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중항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을 바엔 광견한 사람이라도 함께해야 한다. 광한 사람은 진취적인 장점이 있고, 견한 사람은 해서는 안 될 짓은 결코 하지 않는 바가 있다).”(13·21) 공자의 그 말에서 中行이란 중용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 표현이 보편적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맹자는 공자의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中行대신 中道라고 표현합니다. “孟子曰 孔子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맹자·진심하> 맹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공자의 中行이라는 표현을 中道라고 표현해도 같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희가 이다라고 주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맹자는 공자의 말에서 이라는 개념만을 중시했지 이라는 글자는 개념어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中行이라고 하든 中道라고 하든 같은 뜻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불교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中道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만을 개념어로 받아들일 뿐 는 일반명사로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中庸하는 태도를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기의 색깔을 드러내고자 하고, 누구든 특출하고자 하는 것이 본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위치하면서 특출하고자 하지 말라는 충고는 공자만의 충고에 머물지 않고 중국인 보편의 처세철학이 됩니다. 지극히 공자다운, 지극히 중국문화다운, 지극히 실리적인 태도를 숭상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는 실리적인 태도에 대해 권유를 한 것이지 추상적인 어떤 것을 획득하라고 권유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유자들은 中庸을 추상적인 관념처럼 받아들일까요?

그것은 중용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중용은 원래 예기의 한 편 이름인데, 거기에서는 논어의 저 문장이 中庸其至矣乎 民鮮能久矣”(중용은 참 지극하건만, 오래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로 바뀌게 됩니다. ‘中庸之爲德中庸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中庸은 누가 보더라도 추상적인 관념처럼 읽힙니다. 이어지는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군자는 중용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상을 피해 살면서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직 성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언급은 더욱 그렇게 읽히도록 만듭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天下之大本也 和也者天下之達道也”(희로애락이 미처 표현되지 않은 상태를 이라 하고, 표현하되 모두 절도에 맞추는 것을 라고 한다. 이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고 란 천하의 도를 통달하는 것이다)라든가, “君子中庸 小人反中庸”(군자는 중용하지만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라는 언급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색은행괴(索隱行怪:은일을 추구하고 괴이한 행동을 함)하지 않고 중용에 의지함이라는 표현이나, ‘택호중용(擇乎中庸:중용을 택함)’이라는 표현, 그리고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군자는 중용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상을 피해 살면서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직 성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은 중용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표현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용중용을 거치면서 높은 추상성을 확보하게 되고, 주희가 예기에서 중용을 떼어내 독립한 경전으로 숭상하자 유가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매김 됩니다. 공자는 처신하는 태도로서 中庸을 말했건만, 송유들은 공자의 육성인 논어에 의거하지 않고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중용에 의거하여 中庸을 추상적인 관념으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중화(中和)’중도(中道)’라는 말과 함께 설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없이 추상명사로 탈바꿈된 셈입니다.

공자는 過猶不及(일정한 선을 넘는 것은 그 선에 못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야)(11·16)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음미하면 중용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표는 정량적인 수치가 아니라 적정한 선이기 때문에, 그 선을 초과하는 것은 그 선에 미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너무 잘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이라고 했는데, 공자는 그 많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가르침의 내용(contents)’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렵습니다. ····등 유가가 중시하는 덕목들은 모두 논어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그런 덕목들에 대해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름만 언급할 뿐 그것들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한 바가 거의 없습니다. 공자는 내용을 가르친 게 아니라 기준만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 점이 공자가 중국인들이 곧잘 견주는 소크라테스(470~399BCE)나 플라톤(427~347BCE)과 다른 점입니다. 그 두 사람은 자신이 탐구하고 사색한 내용을 전수하고자 했지만, 공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기준··등의 상징어로써 제시할 뿐이었습니다. 그 기준으로써 제자들을 평가하고 측정하기만 했습니다. 공자는 그런 것을 가르침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제자들 또한 공자에게 평가받고 측정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달리 말하자면 공자의 평가를 거쳐 일정한 지위를 얻기 위해 공자에게 온 것이지, 어떤 주제에 매달리면서 탐구하거나 세상을 보는 어떤 틀을 추구하고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공자는 자신이 제시한 기준 즉, 지배계층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은 이미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탐구하거나 성찰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이미 완전한 것을 스승에게서 전수 받으면된다고 여겼던 듯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이 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제자들이 호기심을 보이면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번지라고 하는 제자는 농사에 관해 질문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 종사할 사람들을 배출하고자 제자들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제자들이 농사와 같은 과목은 물론 전쟁과 군사에 관해서까지도 질문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런 것은 전문적인 담당자들이 할 일이지 정무를 맡는 사람이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주군에게 등용될 수 있는 성품, 주군을 섬기는 태도,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 대인관계의 테크닉, 이런 것들에 관한 기준만을 제시하였습니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것,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력 따위는 불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철저히 멀리했습니다. 기준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능력이 탁월하건 부족하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오직 알맞음만을 중시했습니다. 알맞은 적응력, 그것이 바로 중용입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는 오랑캐의 종교라고 폄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왕조를 거치면서 중국화한 불교로 바뀌게 되자 중국인의 사유 영역과 문화 영역을 온통 지배하게 됩니다. 북송 말기에 중원 땅이 다시 오랑캐들의 차지가 되자 강남으로 쫓겨난 한족 지식인들은 한족 중심의 중화문화를 선양하여 문화적인 주도권이나마 유지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자면 기존의 유교로는 불가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들은 한족의 종교인 유교를 일신하여 불교를 능가하는 사유체계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유교의 경전들 가운데서 어느 정도 관념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대학중용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中和이고 이다라는 정도로만 설명되던 옛 주석서를 젖혀두고 관념적인 주석을 달기 시작합니다. 먼저 정이(程頤,1033~1107)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定理”(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이고 바뀌지 않는 것이 용이다. 중이란 천하의 정도이고 용은 천하의 정리이다)라고 전제한 다음, ‘喜怒哀樂之未發(희로애락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이라느니, ‘寂然不動(고요히 움직이지 않음)이라느니, ‘感而遂通(느껴서 통함)라느니, ‘天下大本이라느니 하는 주석을 달게 됩니다. 후배인 주희는 中者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平常也”(중이란 치우치거나 기울어지거나 하지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의 이름이다. 용은 평상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의 덕이고 의 덕이라는 관념적인 해석을 덧붙이게 됩니다.

중용하는 것이 보탬이 되는 처신이라는 공자의 언급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정이와 주희의 주석은 종잡기 어려운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 중용을 유가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그 개념에 대한 설명만큼은 이처럼 서로 달랐습니다. 한참 후배인 왕양명은 過不及處(넘치거나 미치지 못한 바)를 아는 것이 中和라는 말도 합니다. 이처럼 같은 원전을 두고 서로 달리 설명하는 중국의 전통 학문, 그러니까 유학, 특히는 理學이란 것의 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쨌든 송대 신유학의 집대성자라고 평가받는 주희는 마침내 중용예기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경전으로 승격시킵니다. 그리하여 13가지나 되었던 유교 경전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라는 네 가지 수행서와, 』 『』 『이라는 고전으로 압축됩니다. 사서삼경이 그것입니다.

남송의 유자들을 거치면서 중용은 높은 추상성을 확보한 추상적 관념의 이름이 됩니다. 중용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표현은 논어에도 중용에도 없건만 주희가 중용을 사서(四書)의 하나로 높인 사실만으로도 유자들에게 중용은 최고의 덕목이 되어버립니다. ‘中和中道니 하는 낱말과 섞여 알쏭달쏭한 추상명사로 탈바꿈된 것입니다.

앞서지도 말고 쳐지지도 말고,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중간에 있어라. 그래야 확실한 방향으로 처신할 때 유리하다. 특출하려고 하지 말고 평범하려고 해라. 이런 처신이 가장 보탬이 되는 처신이다!” ‘중용이라는 도리는 참으로 쉬운 도리입니다. 중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처신의 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君子  (0) 2024.01.29
인(仁)이란 무엇인가?  (0) 2022.03.20
知(지)를 아는가?  (0) 2021.11.24
義란 무엇인가?  (1) 2021.10.12
士(선비)란 무엇인가?  (0) 2021.10.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