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아시아 문화

인(仁)이란 무엇인가?

by 曺明和 2022. 3. 20.

우주의 구조가 하늘과 땅으로 나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의 구조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다는 것이 공자 사유체계의 기본 틀입니다. 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듯이, 인간세상도 군주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움직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군주의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연결시킵니다. 물론 그러한 구상은 순전히 공자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내려오던 관념들을 정리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공자의 사유체계는 이렇듯이 군주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구조와 위계질서에 대한 사유체계입니다. 권력은 자기보다 아래의 서열을 결정하는 힘을 가리키고, 그 힘이 위에서 아래로 행사되도록 짜인 구도를 위계질서라고 합니다. 권력이 위계질서에 따라 매끄럽게 행사되는 것을 치(:잘 다스려짐)라고 불렀고, 그렇지 못한 상태를 란(:어지러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자기보다 아래 서열을 향한 권력은 얼마든지 행사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자의 사유체계이자 고대 중국의 정치관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그러한 정치관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공자는 를 향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제후국의 재상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노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도 괜찮다고 여겼던 듯합니다. 제후국 가운데 한 나라의 질서만 바로잡으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서 쇄신될 것으로 여긴 듯합니다. 그렇게 해서 주왕조 전체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불러주는 제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했던 몇 사람이 공자를 불렀던 듯하고, 그때마다 공자는 응하고자 했던 흔적은 있습니다. 공자의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그가 죽은 뒤 한참 지나 이라는 통일제국이 들어설 때 비로소 실현됩니다.

공자가 중국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정치현장에서 어떤 실적을 낸 사실보다도 정치를 제대로 할 사람에 대해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무를 담당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에 대해 가르치고자 직접 제자들을 모아 공동체를 꾸렸습니다. 그는 정무를 제대로 할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습니다. 군자는 시경·서경과 같은 고전을 익히고, 에 대한 조예를 갖추며, 궁극적으로 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은 우선 무()의 힘이 아닌 의 힘입니다. 요즘 이라 하면 문화를 떠올리겠지만, 공자가 강조한 지속 가능한 비폭력적 정치권력에 다름 아닙니다. 요즘 문인(文人)’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지만 전통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승인, 그러니까 과거(科擧)와 같은 장치를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문인지배층이나 다름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정치권력과 무관한 은일’(隱逸)이라는 문인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은일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대체로 권력층에 끼려다가 실패했거나 권력층에서 밀려난 부류였지 능동적으로 권력을 외면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정치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 권력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쌓기에 유리한 처신으로서 택하는 것이 은일이었지, 차안(此岸)과 절연하고 피안(彼岸)으로 가고자 택하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피안으로 가기만을 목표로 하는 불교의 승려들조차 피안보다는 차안과 더 친연을 맺었던 것이 중국의 문화적 문법이었습니다.

공자는 총체적으로 의 힘을 이라고 불렀던 듯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으로 규정하면서, 지배/피지배의 구조가 안정되었던 주()왕조 초기의 사회 모델을 회복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회복하는 방법으로는 지배층, 그러니까 정무 담당자들을 소양을 갖춘 계급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재 지배층에 속하지 않은 계급의 제자들을 모아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장차 정무를 담당하겠다는 꿈을 갖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공자는 정무 담당자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의 힘)을 종합적으로 이라고 불렀고, 을 갖춘 사람을 君子라고 부르면서, 너희들이 을 갖춘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는 외에도 ······등 여러 덕목에 대해서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듣기에 은 그것들의 총화이거나 근본처럼 여겨졌습니다.

은 원래 군주나 지배계급의 멋진 외모나 행위를 칭송하던 말이었습니다. 내면적인 덕성 가운데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칭송의 말을 자격의 말로 바꿉니다. 군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군자로서의 자격은 우선 호학(好學;배우기를 좋아함)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호학은 학문에 열정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가 생각했던 (배우기)은 요즘의 학문과는 다릅니다. 성인이 이미 만들어 놓은 완성된 규범을 본받아서 익히는일입니다. 호학하는 기초 위에서, 내면으로는 을 축으로 삼고, 외면으로는 를 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공자는 누누이 말합니다. 제자들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니까, 어떻게 하면 을 완성할 수 있는지, 이미 을 완성한 사람에는 누가 있는지 등에 대해 집요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대답은 그때마다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교언영색(말을 실제와는 다르게 교묘하게 왜곡하고, 얼굴빛을 실제 감정과는 달리 좋게 꾸며서 내보임)에는 이 없다느니, 그 사람이 저지르는 허물을 보면 한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느니, 인자는 산을 즐기고 지자는 물을 즐긴다느니, 인자는 수명이 길다느니, 인자는 근심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만 나열할 뿐이었습니다. 이란 것의 개념은 무엇이고, 을 완성하자면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뿐 아니라 다른 추상명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개념을 도외시하는 태도는 공자만의 특징이 아니라 한자문화권 전체의 특징인데, 그러한 태도는 본질주의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태도와 비슷한 성격입니다.

본질주의적 태도란 대상을 투명하게 표상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표상을 위해 보편적인 기초를 찾고자 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런 태도는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권력과 관계가 깊다고 봅니다. 20세기 이후, 세계의 지성은 그러한 본질주의적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인식보다는 대화의 과정, 사유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중시하게 됩니다. 언어는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 그래서 대상에 대한 표상작용은 인간과 대상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인식주체와 실재의 관계가 아닌 사회적 현상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발표한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원류는 인간의 근원성은 이성이 아닌 욕망에 있다는 프로이트, 인간의 우주적 본성은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 의지라는 니체, 인간의 근원성은 그 사람의 물질적 조건에 있다는 마르크스, 동물과 인간을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한 다윈, 정신보다 물질이 위에 있다는 포이어바흐 등으로 소급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본질주의를 부정하면서 짐짓 상대주의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 사상사에서 본질과 같은 것에 대한 사유는 없었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피안이나 죽음 뒤의 세계와 같은 관념이 불교가 수입된 이후 자리 잡을 뿐이었습니다. 관념적인 것은 대체로 헤게모니를 잡는 데에 이용될 뿐이었습니다. 남송의 유자들이 구상한 리학(理學)이 바로 그 사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상화하여 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으로써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만 상대를 보고, 자신의 언어로만 상대를 규정하고자 했습니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은 객체로 보지 않고 대척으로만 봅니다.

공자는 장자·천도편(天道篇)에 나오는 윤편(輪扁)처럼 자기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감각을 중시했던 듯합니다. 개념을 도외시했습니다. 그래서 후학들은 이것이 이다라는 설명에 너도나도 몰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숱한 주석서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원전이 애매하거늘 주석이 분명할 리는 없습니다. 주석에 대한 주석이 또 필요하게 됩니다. 중국의 학문이 주석학으로 귀결되는 데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념 위주로 공부해온 현대인이 논어를 통해 유가사상을 이해하자면 이러한 중국적 전통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자는 를 합한 글자처럼 보이지만, 본래 그렇게 만들어진 문자는 아닙니다. 논어에 언급된 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욕을 절제하고 례에 맞는 규범을 지키기.

남을 존중하기. 나아가서 남을 아끼고 사랑하기.

굳세고 과감하며 질박하고 과묵하기.

혼자 있을 때나 업무를 볼 때나 공경한 태도를 갖추기.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타인과 공감하고, 나아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공직에 나가면 공익을 우선시하고, 사적인 욕망을 절제하면서 례라는 규범을 존중하기.” 더 축약한다면, ‘심미적 감성에서 우러나오는 타자에 대한 배려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은 내면의 덕성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지배계층으로서의 외적 행동규범에 무게를 둔 이름이었습니다. 공자의 설명들을 정리해보자면 남을 고루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의 요체이고, 곧은 사람과 굽은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이 의 요체이며, 인간을 통합적으로 대할 줄 아는 능력이 이고, 인간을 개별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자의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참고됩니다.

을 실천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집을 나서서 공무를 볼 때는 누구에게든 큰 손님 뵙는 듯이 몸가짐을 하고, 인민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모시듯 공경해야겠지.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결코 요구하지 않아야지. 또한 중앙에서 일하든 지방에서 일하든 남의 원망을 사는 일이 없어야지)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一以貫之하는 도리는 라고 제시합니다. 그리고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에서 己所不欲 勿施於人을 제외한 나머지는 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라는 말이 됩니다.

공자는 인을 지배계층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여겼지 피지배계층을 포함하는 보편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여기지는 않았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에서 使民을 가지고 비유하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바람직한 지배층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이지 보편적 인간애의 실천에 관심을 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공자를 보편적인 휴머니스트로 설명하는 견해는 그래서 왜곡입니다.

공자는 에 대해 딱 한 차례 단정적으로 표현합니다.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而由人乎哉”(자기를 누르고 례를 회복하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것. 하루라도 자기를 누르고 례를 회복하겠다는 태도를 가진다면 천하 모두가 인의 실천에 마음을 기울일 거야. 인을 실천한다는 것은 자기에게서 말미암는 것이지 남에게서 말미암겠는가?)라고 말합니다. ‘克己復禮爲仁맹목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모든 언행을 예에 맞추는 것이 곧 인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맹자는 이 문장에서 극기를 강조하는 이론을 전개하고, 순자는 복례를 강조하는 이론을 각각 전개합니다. 공자는 이나 와 연용하여 仁義禮義니 하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지만, 맹자는 수양성덕(修養成德)의 핵심으로 仁義를 강조하고, 순자는 사회적 효용으로 禮義를 강조합니다. 가운데 어느 것을 앞세우느냐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지만, 나가는 방향은 그만큼 달랐던 것입니다. “性相近 習相遠(인간의 본성은 비슷하지만 습관 때문에 차이가 멀어진다)”(17·02)이라는 공자의 발언을 가지고도, 맹자는 性相近을 강조하고 순자는 習相遠을 강조하는 차이를 보입니다. 공자의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16·09)라는 말을 가지고도, 맹자는 를 통해 生而知之한 도덕주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순자는 을 통해 學而知之하는 지성주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유가사상이 형성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대 유자들은 을 유가사상의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하고서 여러 설명을 하게 됩니다.

맹자는 親親仁也(친해야 할 사람과 친하는 것이 인이다)”라고 말하면서 측은지심과 연결하는가 하면,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하면서 자기 어버이를 버린 자는 없고, 하면서 자기 임금을 뒤로 한 자도 없습니다)라면서 와 묶어서 仁義를 강조합니다. 맹자의 그런 언급은 유교체제의 토대가 됩니다.

소식(蘇軾,1037~1101)20살에 형상충후지지론(刑賞忠厚之至論)’이라는 시권(試卷)으로 과거를 치를 때 제출한 可以賞可以無賞賞之 過乎仁 可以罰可以無罰罰之 過乎義 過乎仁不失爲君子 過乎義則流而入於忍人 故仁可過也義不可過(상을 주어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상을 주는 것은 인이 넘쳐서이다. 벌을 주어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벌을 주는 것은 의가 넘쳐서이다. 인이 넘친다 해서 군자가 못되지는 않지만, 의가 넘치면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인은 넘쳐도 괜찮지만 의가 넘쳐서는 안 된다)”라는 답안은 를 설명하는 명문장으로 꼽히게 됩니다.

리학체계를 세운 주희는 로 파악하면서, 우주가 만물을 낳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까지 규정합니다.

조선의 정약용은 을 합한 것이니, 부자관계 군신관계 부부관계는 물론 천하 만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람이 자기 분수를 다하는 것이 인이다.”고 설명합니다.

담사동(譚嗣同,1865~1898)이나 강유위(康有爲,1858~1927)처럼 서구학문을 접했던 사람들은 을 에테르나 전기처럼 만사만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최후 실재와 동등하게 여기거나, 자유·평등·박애의 근대적 이념을 위한 철학의 근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즘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이택후도 천지에 참여하는 본체로서의 성질이라고 규정한 다음, 인을 본체로 하는 철학적 기초를 다시 세우자고 주장합니다.

이 밖에도 이것이 의 본질이다라는 저마다의 주장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다,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다, 길면 기차~’라는 어린이들 언어유희처럼, 단편적인 유사점만을 가지고 양자는 동일하다고 단정해버리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사과는 바나나이다라는 주장들이 별다른 점검 없이 학문적 방법론으로까지 동원됩니다. 그런 것이 중국 학문의 실정입니다. 문자학에서는 그런 것을 인신의(引伸義)니 통용의(通用義)니 하는 말로써 정당화하는데, 원전을 필요 이상으로 분해한 다음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과 유사한 다른 어떤 것을 찾아서는 그러므로 둘은 같다.”라고 단정하는 방식이 학문적 방법론이 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런데 실제와는 동떨어진 그런 단정은 세월이 흐르면 실제로 인식됩니다. 그런 사정을 중국인들은 잘 알기 때문에 늘 기록을 고치고자 합니다. 그런 것은 모든 언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시맨틱 시프트(semantic shift:시간이 지나면 말의 의미가 본래의 뜻과 달라지는 현상)와는 다릅니다. 중국에서 위서(僞書)나 표절을 엄중한 위반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은 그래서 생긴다고 봅니다.

이처럼 중국의 문언문은 손쉽게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약한 체계입니다. 예컨대 事出有因 査無實據라는 문장과 査無實據 事出有因라는 문장은 순서만 다를 뿐 같은 문장이지만 맥락은 정반대입니다. 앞 구는 빌미가 있어서 발생된 일이지만 조사해보니 근거는 없었다는 뜻이고, 뒤 구는 조사해서 근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일의 발생에는 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전자는 죄가 없다는 뜻이고, 후자는 공소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連戰連敗’(싸우기만 하면 계속 졌다)라는 보고서 문장을 連敗連戰’(계속 지면서도 계속 싸웠다)으로 바꾸어서 보고했던 증국번(曾國藩,1811~1872)의 고사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의도적인 왜곡은 현대에도 여전합니다. 관료들이 失業(직업을 잃음)’待業(직업을 기다림)’이라 표현하고, 가난뱅이를 待富者(부유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이지만, 부하에게 받은 뇌물을 예절성 수뢰라고 표현하거나, 오류를 정확성 착오’, 강제 철거를 보호성 철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라는 말보다 훨씬 악취가 나는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거 없는 정보가 미디어나 입소문을 통해 거듭 다루어지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미국 작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1923~2007)‘fact’에다 비슷한 것을 뜻하는 접미사 ‘-oid’를 붙여서 팩토이드(factoid:의사사실)라고 불렀는데, 이런 왜곡은 팩토이드와도 다릅니다.

 

 

 

 

'동아시아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4.01.29
君子  (0) 2024.01.29
중용(中庸)이란 무엇인가?  (3) 2021.12.15
知(지)를 아는가?  (0) 2021.11.24
義란 무엇인가?  (1) 2021.10.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