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홍콩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이 말은 "詩經" 에도 나오고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 천지가 장구한들 다할 날이 있겠지만 이내 한은 이어이어 끊일 날이 없으리)에도 나오는 말이다. 백낙천의 이 시구에서 우리는, 중국인들은 자신의 목숨과 욕망이 천지가 다할 때까지 길이길이 이어지기 바라는 것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구절을 가지고 혹시 “중국인들은 천지도 끝나는 날이 있음을 짐작하는 대단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해석한다면 참으로 딱한 해석이 된다. 그런 해석은 마치 “안 보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할 수 있다”는 말을 가지고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는 안 보는 데서는 나라님을 욕할 수도 있었구나”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말에서는 나라님이라는 존재는 결코 욕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읽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문화에서는 사람의 목숨이건 공동체의 운명이건 일단 오래 가는 것을 제일로 친다. 그 목숨이 살만한 가치가 있고 없고는 개의치 않는다. 가치라는 것에 대한 무시, 그러니까 심하게 말하자면 가치관이 필요치 않은 문화라고 보면 된다. 그저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큰 힘이요 가장 확실한 영광이다. 그래서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정책 대결을 벌이기보다는 연명(延命)의 경쟁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옛날의 천자들 또한 말할 것 없이 자신의 수만세(壽萬歲)에 모든 것을 걸었을 뿐 백성들의 삶이란 그저 자신의 영광을 수식하는 도구일 따름이었다. 특히 최근까지의 공산당처럼 창업공신들이 많았던 경우 팔십 아니면 구십, 적어도 칠십은 되어야 지도자 반열에 끼일 수가 있었다. 등소평을 보라. 수차례나 실각을 하였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참아내고서 개기다 보면 재기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불명상태로 그저 숨만 붙어 있어도 그의 영향력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건재하지 않았는가? 중국과 가까운 북한은 더 가관이다. 송장이 통치하는 유훈통치를 몇 년이나 했었는가.
우리 눈에 희한하게 보이는 이 현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한 백년 동안 식민지도 겪고 미국물도 먹으면서 중국과 단절이 되다보니 이를 희한하게 보게 되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영락없이 그와 똑같은 시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텃세문화이다. 농경문화랄 수도 있지만, 농경문화의 전통에 정주(定住)의 성향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텃세문화라고 내가 이름해 본 것이다. 한 자리에 가만히 파고 앉아서 천년이고 만년이고 누리는 것. 누구든 그 텃세를 건드려서도 안 되고 자신도 텃세권 밖을 넘보지도 않는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얼핏 평화로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거기에는 지배와 피지배가 확실하게 설정되어 세습하는 체계가 있다. 지배계층은 이것을 이른 바 안정된 사회라고 말하지만 대다수 피지배계층은 하는 수 없이 견딜 따름이다. 견디다 도저히 참지 못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터뜨리기도 하지만(이것을 역성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렇더라도 지배계층의 주인만 바뀔 뿐 동일한 구조는 또다시 지속된다. 이 주기는 한 이백년쯤 된다. 그래서 헤겔이 중국을 ‘반복의 역사’요 ‘지속의 왕국(The Empire of Duration)’이라고 규정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해도 탁견이라고 본다.
이렇게 오랜 세월 개기기만을 지고의 목표로 삼는 세상에서는 구분이란 것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선악도 예정(穢淨)도 별로 구분하지 않았다. 옷을 빨아 입는다는 것도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이었고, 불교가 들어온 뒤에야 생겨난 관념인 선악에 대한 관념도 장차 복을 받으려면 선업을 쌓아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의(義)와 불의라는 구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주군(主君) 즉, 지배자에 대한 충성에다 기준을 둔 구분이었지 자신이 스스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지켜야 할 기준은 아니었다.
문화의 질적 고하를 규정하기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반복과 지속의 문화 곧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권은 갈등과 극복의 문화 곧 서구문화권이 지닌 ‘힘’이란 것에 현재 눌리고 있다.(물론 문화를 이렇게 도식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지만 ‘문화권’처럼 대별하여 파악하는 관점은 언제나 필요하다) 물론 중국문화권이 자신의 방식대로 개기다 보면 앞으로 언젠가 서구 문화권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비록 그런 세월이 온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한국인)는 이제 단지 배만 부르게 해주면 ―이른 바 요순시절의 함포고복하는 태평성대란 것도 바로 이런 상태 외에 다름 아니다―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게 바뀌었다. 개인적 삶의 질,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원활한 시스템을 우리는 이미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예전처럼 지배자가 베풀어 주는 시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져야만 값진 것임도 알게 되었다.
처절한 보릿고개가 매년 찾아와도 가장(家長)은 자그마한 한 가정의 지배자로만 군림한 채 점잖게 이쑤시개나 만지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 식구는 초근목피를 찾아 나서야 하는 한심한 작태가 더 이상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여유로 분장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선비의 개결한 태도라고 오늘날 위장하기도 하는 위와 같은 처신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게으름과 개김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명절에 곡식이 없어서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내었다는 이야기는 얻어맞고도 아픔만 느끼지 않으면 정신적 승리를 한다는 아큐(阿Q)의 태도와 조금도 다를 것 없다. 바이킹들이 무슨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폭도들이라고 수만리 바닷길을 늘 나가 싸워서 남의 것을 빼앗아 왔을까. 그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고자 했던 한 가지 방법이 아니었던가?
한편 우리는 요즘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이라며 너도나도 건강하려고 용쓰며 산다. 기괴한 음식이란 다 찾아서 먹고 별난 짓이란 죄 만들어 한다. 기(氣)니 사상의학이니 하는 합리성을 뛰어넘는 것들에 대한 선호가 놀랄 정도이다.(현대과학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현재의 합리성을 가지고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현상들은 바로 ‘그대로’‘그 자리에서’'오래만’버티려는 데서 나온 현상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란 것에 대한 바라봄, 타자에 대한 바라봄, 나와 타자와의 구분, 자신에 대한 성찰, 도대체 이런 것들이 없는 오랜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것들이 없이 오래만 살려고 하니 온갖 추한 짓이 다 나오게 된다. 작년 아니 재작년 가을에나 진작 떨어졌어야 옳을 쪼그라진 열매가 아직도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것처럼 온갖 재주를 피워 이리저리 붙어서 수십년 동안 이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정치인이나, 구린 곳이면 가리지 않고 모이는 쉬파리처럼 권력이 바뀔 때마다 그저 달려가서 붙는 지식인들이나, 모두 어떻게든 오래만 살고자 하는 중국문화권의 특징을 온전히 갖춘 인물들이라 불러도 좋다. 공해중 제일 큰 공해는 이렇듯 ‘육신만 건장한 채 천장지구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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