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주식은?
밥, 국, 김치, 장, 찌개이다.
이것들은 반찬이 아닌 주식이다. 그래서 5첩이니 7첩이니 하는 반찬 가짓수를 셀 때 포함시키지 않는다.
쌀밥이 우리의 주식이라는 사실에는 별 의문이 없다. 김치도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도 빠져서는 안 되는 소스이니 주식으로서 이견 없다. 국? 이것도 스프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에서든 주식이 될 만하다. 다만 찌개가 좀 의문이다. 그게 어떻게 해서 우리의 주식이 되었을까?
한국인이 먹는 유동식(流動食은 의학적인 명명인 듯하다. 流質음식이라는 중국의 명명이 더 낫다)의 종류에는 국과 찌개 외에 전골도 있고 죽도 있다. 이것들의 연원부터 알아보자.
알곡으로 만드는 것이 飯(밥)이고 야채나 물고기로 만드는 것이 羹(국)이라는 것이 한문고전의 사전적 설명이다. <설문해자>는 ‘五味를 고루 맞춘 것이 羹(갱)’이라는 제법 철학적인 설명을 하는데, 그 책은 원래 엉터리 관념으로 가득한 책이라서 참고할 바 못된다. <논어>에 나오는 “一簞食 一瓢飮”을 <맹자>에서 “一簞食 一豆羹”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羹은 가난한 사람들의 먹거리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알곡이 부족한 집에서 분량을 많게 만들어 배를 채우는 주식이었던 것이다.
죽(粥) 또한 마찬가지이다. 알곡이 넉넉하지 못하니까 다른 것을 섞어서 유동식으로 만든 것이 죽이다. 사전에서는 烹穀爲粥(알곡을 삶아 죽을 만들다)이라고 한다. 밥은 원래 烹(팽:삶다)하지 않고 蒸(증:찌다)하여 만든다. 화력이 강한 요즘이야 烹하지만. 그러던 죽이 중세 무렵부터는 식용과 약용이 융합되어 養生의 단계로까지 올라간다. 화학에서 일컫는 糊化반응 탓이라고 본다.
요즘 중국에서는 국을 羹이라 부르지 않고 湯(탕)이라 부른다. 湯은 원래 끓는 물을 가리키는 말이다.(沐浴湯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만들어진다) 조선조 말엽이 되면 중국을 따라 국을 羹이라 부르지 않고 湯이라고 부르게 된다. 고종 년간 만들어지는 이름인 ‘설렁탕’을 보면 알 수 있다.
찌개는 국보다도 더 걸쭉한 조리방식이다. 찌개보다 더 걸쭉한 것으로 전골도 있다. 그러면 찌개니 전골이니 하는 음식을 우리는 언제부터 즐겨 먹게 되었을까?
찌개라는 말의 기원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왕과 관련한 기록은 질리도록 많이 남긴 조선이지만, 민중의 생활과 관련한 기록은 거의 없다. 김치를 뜻하는 중세어 ‘디히(>지히>지)’에 접미사 ‘-개’가 결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이다. ‘디히개>지히개>지이개>찌개’ 이런 정도로 변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니 饌具를 살피는 수밖에 없다. 국이나 찌개는 수저를 사용해야만 먹을 수 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수저가 사라졌다. 한반도는 임진왜란 무렵부터 수저 모양이 지금처럼 국물을 뜨기 편하도록 바뀐다. 물론 출토품을 가지고서 하는 말이다. 그 이전의 수저는 길게 눕힌 S자 모양에다 폭도 좁아서 그런 생김새로는 도저히 국물을 떠서 입으로 넣기 어렵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무렵부터 조선의 음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 생각으로는 몽고 지배기간 80년 무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기 어렵다. 전쟁은 일시에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왜인들은 7년 남짓 조선에서 머물렀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고추 담배 호박 등 새로운 식재료들이 그 뒤로 많이 들어온 것을 보더라도 전쟁은 인민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왜인들이 상주하던 부산에서는 일본의 스키야키(鋤焼,すきやき)가 유행하였는데, 양반들은 그것을 音借하여 勝妓藥湯이라고도 불렀다.
찌개나 전골은 잡다한 식재료를 한꺼번에 넣어서 만드는 방식이다. 부족한 식재료를 한꺼번에 모아서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기온이 차가운 지방에서 먹기에 좋다. 한반도는 분명 중국 남부나 일본에 비해 식재료도 부족하고 기온도 춥다. 국물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보르슈치가 발달하고 만주 지방에서 만둣국이 발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국밥으로까지 발전한다. 저널리스트들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찌개 음식들의 현대적인 레시피가 정립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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