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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학/한국어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by 曺明和 2021. 7. 20.

<2005년 10월 5일 작성>

 

우리나라 모든 자동차의 옆 거울에는 이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읽자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장이다. 철학자의 아포리즘과도 닮은 문장이다. 

이 문구는 “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의 번역문이다. 자동차 옆 거울은 반사각을 넓게 하기 위해 볼록거울로 만든다. 그래서 상이 평면거울보다 작다. 하지만 볼록한 정도가 심하지 않아 운전자들이 평면거울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상이 작다고 해서 실물이 평면거울에 비칠 때와 같은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문구를 적은 것이다. 한국인처럼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문구이지만 선진국의 자동차에 적혀 있으니 우리도 따라한 모양이다. 

따라 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이해 가능한 문장으로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장은 매끄럽지 못한 번역 정도가 아니라 아예 非文이다. “실물은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라든지, “실제보다 멀게 보입니다” 등 얼마든지 우리말 화법에 맞는 표현들이 있지 않은가. 일단 문장의 형식이 서술형이 아닌 것부터 걸린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다 세계 최고의 정보강국이라고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언어 수준은 이렇다. 저런 非文이 수천만 대나 되는 자동차에 수십 년 째 새겨지는데도 우리말과 관련된 책임 있는 부서의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듯하다. 

 

국제화시대란다. 좋다. 그렇지만 국제화시대에 더욱 중요한 것은 모국어다. 한국어의 세력을 떨치고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 아니다. 국제화시대에 대등하게 참여하자면 한국어의 질적 세련이 필요하다. 현대의 한국어는 과거 봉건문화를 담당하던 시대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광복 이후 비로소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지향점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한국어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자어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본다. 한자어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한 식민지 이후 추가되었던 일본어와 영어로 인한 왜곡 또한 마찬가지로 벗어날 수 없다. 한마디로 허우적대고 있는 형편이다. 한글 맞춤법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세상에 이런 맞춤법이 어디 있는가. 세계 공용어라는 필요 때문에 한국인은 영어를 익혀야 할 뿐 아니라 현대 문물에 대한 한국어의 표현능력 부족 때문에도 보조적인 언어로서 영어가 필요한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한국이 큰 나라가 되었으니 한국어의 우수성도 세계에 자랑하자는 취지는 결코 아니다. 언어의 질적세련도가 낮으면 창의적인 문화 문물을 감당할 수 없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다툼이 증가하고, 고소고발 사건이 일본보다 백배나 많으며, 군대에서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비극이 빚어지는 데에도 한국어의 고질적인 병폐가 큰 이유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식민지로 2백 년을 보냈고, 또 광복했다 해도 이미 50여 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굳어질 것만 같았던 ‘봄베이’‘캘커타’를‘뭄바이’‘콜카타’로 복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인도의 사례는 언어가 한 나라의 주체성 확립과 창의적인 문화창달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확인시키는 좋은 예이다.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한자어를 써야만 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영어를 보조적으로 표현해야만 정확하게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현실이다. 요즘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배경에는 현대 한국어의 불완전성을 보충하자는 이유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하자는 실용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한자교육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한국어의 불완전성을 이대로 두고서는 안 된다. 과거, 특히 조선 후기 이후, 한자어로 바꾸어진 순 우리말을 회복하지 않는 한 한자교육의 부활은 결국 또 다른 왜곡을 첨가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언어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 남북이 협력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국어학자들은 북한의 언어정책과 그 60년의 성과를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주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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