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과 私
현대 한국인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합당한 가치관을 지향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체제 가치관도 여전히 안고서 살아갑니다. 두 가치관은 종당에 모순을 빚을 수밖에 없지만, 아직 모순이 크게 노출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다종교 사회이면서도 갈등이 노골화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노골적인 충돌은 자제하는 관습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두 가치관이 어떻게 모순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모순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장차 큰 위험이 닥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주동적으로 설계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순 가운데 두드러진 것으로는 ‘공(公)/사(私)’에 관한 관념입니다. 요즘 한국인은 ‘공/사’를 ‘public/private(individual)’의 뜻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한국어 ‘공/사’에는 유교체제의 ‘公/私’에 관한 관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유교체제에서 ‘公’은 ‘공공(public)’이라는 뜻이 아니라 ‘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공립학교’는 시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민간 학교가 아니라 관에서 설립한 학교를 가리킵니다. 또한 유교체제에서 ‘私’는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개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공을 해치는 사적인 행위를 비난하는 뜻입니다. 公의 반대로서 당연히 부정적인 뜻이었습니다. 전체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테두리를 앞세우거나, 남이 알 수 없는 은밀한 영역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私는 원래 ‘厶(私人, 자기)이 가진 禾(식량)’, 그러니까 요즘 ‘사적’(私的, private)이라는 말의 의미와 비슷한 ‘내 몫’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전체를 중시하는 유교체제에서 ‘내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히 부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私는 ‘비밀리에’라는 뜻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어에서 私는 ‘private(individual)’의 번역어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현대인 가치관의 토대는 개인입니다.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주체로서의 개인’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가치도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교체제 가치관의 토대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였습니다. 개체가 아니라 집체 즉, 국가나 천하였습니다. 모든 가치는 국가나 천하와 같은 ‘전체’의 완벽한 질서, 그리고 그것이 영속되는 것, 이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것을 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公은 ‘전체’ 또는 전체를 관장하는 가버넌스를 의미합니다. 춘추시대에는 공실(公室)이나 군장(君長)을 가리켰습니다. 따라서 公에 대한 강조는 공실(公室) 즉, 지배권력의 우두머리를 앞세워야 한다는 강조였습니다. 한편 公에는 ‘골고루 나눔(平分)’, 또는 ‘골고루 나누어주는 주체’라는 뜻도 있어서, ‘분배는 공평하게!’라는 강조를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公은 최고의 가치를 나타내는 글자였습니다. 따라서 公을 요즘의 ‘공공’(公共, public)의 의미와 같게 여길 수 없습니다. 요즘의 ‘공공’은 사(私, private)들의 연대를 의미합니다.
유교체제의 公과 私를 설명할 때는 전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체제 사회에서 利(보탬이 됨, 쓸모 있음)는 당연한 가치였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利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利는 원래 날카로운 칼날을 가리키는데, 칼날은 날카로울수록 편리하므로 편리(便利)라는 뜻이 되고, 일은 편리해야 보탬이 되므로 보탬(利益)이라는 뜻이 됩니다. 다만 利는 당연한 것이되 권리는 아닙니다. 권리라면 어떤 경우에든 보장되는 것이지만, 권리는 아니기 때문에 보장되는 利는 없습니다. 주어지거나, 아니면 차지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利를 향한 다툼과 겨룸은 일상화되며 그것이 비난할 바는 못 됩니다. 다투거나 겨루지 않았는데도 주어지는 利는 복(福)이라 부르게 됩니다.
국가나 천하는 ‘public’의 관념에 따라 경영(management)하는 대상이 아니라 누구든지 겨루어서 차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漢, 唐, 宋 등의 국호는 국가경영의 이념을 담은 이름이 아니라, ‘천하는 漢, 唐, 宋 땅의 출신이 차지가 되었다’는 뜻에서 차용되는 ‘지명’이었습니다. 국가를 소유의 대상이 아닌 경영의 대상으로 보았던 몽골이 중국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이념적인 국호를 채택하게 됩니다. 『역경』의 ‘대재건원(大哉乾元)’이라는 구절에서 ‘대원(大元)’이라는 이름을 취했습니다. 이후 등장하는 왕조들도 元을 따라서 明·淸 등 이념적인 국호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실질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利에는 권리 대신 공(公)이라는 개념이 강조됩니다. 개체의 利인 私利보다 집체의 利인 公利를 우선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가 그것입니다. 공리(公利)를 우선하는 것이 선(善)이고, 의(義)입니다. 그 반대가 불의(不義)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마주하면 그것을 취하는 것이 義인지를 생각하라)를 누누이 강조했던 것입니다. 송유들은 그 이유에 대해, 公은 천리(天理)와 짝하는 것이지만 私는 인욕(人慾)과 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역대 유교 관료체제에서는 公私兩利를 강조합니다. 요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문화권이 전체를 중시한 데 견주어 서구문화권이 개인을 중시한 것은 분명합니다. 서구문화권은 권력이 집중되는 정주농업의 패턴보다 권력이 분산되는 이동상업의 패턴이 더 많았던 탓으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인간은 유일신의 노예라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널리 퍼진 탓도 있겠습니다. 반면 유교체제에서는 전체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노예가 아닌 한 개인의 freedom이니 independence니 하는 가치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상승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세월이 흐르면 서열도 일정 정도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낮은 서열을 그다지 아쉬워할 것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이라도 점점 많아집니다. 모든 땅이며 모든 사람은 어차피 군주의 것이었으므로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군주와의 관계뿐이었습니다. 나의 책임의식이란 것도 있을 리 없습니다. 책임은 언제나 나의 상위자에게 있을 뿐입니다. 개인의 곤궁함은 군주의 시혜를 통해 해결되는 문제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교체제에서는 군주의 은혜를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 발달합니다. 품앗이는 생기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나와 대등한 개인을 배려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희미합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 학자들은 서구문물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society’의 번역어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오랫동안 고심하였습니다. ‘인간교제’ ‘교제’ ‘국(國)’ ‘정부’ ‘세속’ ‘총체인’ 등 여러 낱말을 수십 년 동안 사용해보다가, 마침내 ‘사회’라는 낱말로 합의하게 됩니다. 그처럼 어려웠던 까닭은 대등한 사람들끼리의 관계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대에 이르러 서구문화가 들어오자 중국에서는 私利를 긍정하기 시작합니다. 私利가 권리라는 생각도 등장합니다. 개인의 욕망이 조화로운 상태가 천리(天理)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公을 官이 아닌 私의 집합으로 보는 관념도 확장됩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공립(公立)이니 공유(公有)니 하는 낱말은 관립(官立)이나 관유(官有)의 뜻이 아니라 공립(共立)이나 공유(共有) 정도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1902년 양계초는 「신민설(新民說)」에서, 삼강오륜과 같은 사덕(私德)이 중시되고 공덕(公德)을 경시한 것이 중국이 쇠락한 이유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회와 국가를 이롭게 하는 공덕을 강조하는데, 이때 양계초가 말하는 公은 전통시대의 公이 아니라 ‘public’의 뜻이었습니다. 1906년, 청왕조의 학부(學部)도 “중국인들에게 부족한 덕목을 함양하는 방법 세 가지가 있으니, 상공(尙公) 상무(尙武) 상현(尙賢)입니다. … 여러 교과목에 공덕(公德)의 뜻과 공동체의 효과를 자세히 기술하여 책을 펴내야 합니다.”라고 정부에 요구하는데, 거기서의 公도 마찬가지로 ‘public’의 뜻이었습니다.
유교체제에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공(公共, public)’이란 개념은 없었습니다. 대등한 개인끼리의 관계를 의미하는 ‘사회’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질서를 위한 위아래 사이의 ‘도리’만이 요구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윤리규범으로서 주어지는 ‘도리’만으로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법치국가라 하더라도, ‘공공’에 대한 관념과 개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회 안정에 가장 중요한 구심력은 공공성 실현에 대한 기대일 것입니다. 공공성이 외면되는 사회에서는 각자도생의 원심력만 작동하게 됩니다. 갈등이 사회를 해체하지 않도록 하려면 공공성 원칙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상식입니다. 국가라는 집체는 공공성 실현을 위한 도구입니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여 그 기대가 꺾이면, 그 사회는 어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