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화

知(지)를 아는가?

曺明和 2021. 11. 24. 06:39

유자들은 공자가 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공자는 만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자는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분별력은 미혹하지 않게 만들고, 인은 근심하지 않게 만들며,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9·29)라는 표현을 거듭합니다. 그 표현은 지자, 인자, 용자라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군자는 , , 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강조입니다. 공자는 가 없는 은 무익하고, 가 없는 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유자들은 공자가 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고 여길까요? 그건 한문의 문장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교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관념에 대해서조차 뭐가 더 높은지 서열을 의식하여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한문의 결정적인 취약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文理를 텄다’(문장의 이치를 터득했다)라는 말을 곧잘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 빈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한문이라는 문장은 대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끼리도 같은 문장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워낙 유명한 문장이나 고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합의를 이루게 된 해석들이 있습니다만, 그나마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한문이라는 문언문체계의 실상은 그런 정도입니다. 참 고약한 문장체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가 만을 가장 높이 여기고 등 다른 덕목들은 그 아래로 여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문이라는 문장체계가 분명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조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알다라고 새길 수도 있고, ‘알려지다라고 새길 수도 있습니다. 한문에서 동사는 능동형과 수동형의 뜻을 동시에 갖습니다. 그러면 논어에 나오는 자의 뜻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공자는 吾有知乎哉 無知也”(내가 무슨 지식보따리를 갖고 있는 줄 아니? 지식보따리 같은 것은 나에게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 문장에서 지식보따리맞춤형 지식정도의 뜻입니다. 나는 정해진 답을 꺼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하고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저 성실하게 알아나가야 한다는 요구였을 겁니다.

에는 자세하게 이해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知禮라 하면 에 전문적으로 밝다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에 밝은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한문에서 ‘~하다라는 뜻의 형용사는 동시에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민이란 통치를 따르도록 만들 수는 있어도 통치를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라는 문장에서 는 배경과 속뜻까지도 환히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문장은 고전에 밝으면서 시사에도 밝아야 스승이 될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흔히 溫故而知新옛것을 익혀가지고 새로운 것을 안다.”라고 새기는데, 옛것을 익힌다고 해서 새것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그 구절만 있다면 억지로 가능한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원문에서 그 구절은 조건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될 수 없습니다. 주절은 어디까지나 可以爲師矣(~야만 남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 있다)’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필요조건이 溫故而知新이라고 말했다면, 그 말은 溫故하면서 知新도 해야~’(고전도 익히면서 시사에도 밝아야~)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溫故해서 知新한다는 말은 성립되기 어려운 말입니다. 고전을 오래 읽는다고 해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접속사는 ‘~해서~하다의 뜻만 있는 게 아니라, ‘~하면서 동시에 ~하다라는 뜻도 일반적입니다. ‘溫故를 익힌다’, 그러니까 고사(故事)나 고전을 익힌다는 뜻입니다. ‘知新새로운 것을 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時事에 밝다라는 뜻입니다. 한문 문장은 이렇듯 임의로 한 부분만 잘라서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자세하게 이해하면 당연히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분별력 있음’, ‘지혜로움이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인을 바탕으로 처신하는 것이 좋다. 매사의 선택에서 인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니?)라는 문장에서 분별력 있음또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는 능력이 곧 분별력입니다. ‘生而知之者라는 문장은 분별력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뜻이고, ‘知者不惑이라는 문장은 분별력은 사람을 미혹하게 만들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가 뭔지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知人이다”(는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다)라고도 대답합니다. 일반적인 신뢰도가 낮은 고대사회에서 사람을 판별하는 능력은 무척 중요했을 겁니다. 공자에게도 이해하기 가장 어려웠던 대상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④『논어첫 장에 나오는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문장에서 의 뜻은 알다알려지다도 아닙니다. ‘알아주다라는 뜻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열 받지 않아야 군자이지!”라는 문장입니다. 인식과 자존의 근거를 남이 인정해주는지의 여부에 두지 말고 자신에게 두라는 뜻이겠지요. 나아가서 알아주다라는 말에는 군주가 나를 알아보고서 벼슬자리를 준다는 뜻도 지니게 됩니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파할 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알려지지 못했음을 아파하라)라는 문장의 뒤 구절을 흔히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아파하라라고 새기는데, 내가 남이 알아줄 정도의 인물이 되지 못했음을 아파하라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내 탓을 하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군자는 자기의 무능함을 아파하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아파하지는 않는다)라는 문장과 같은 뜻으로 여기고서 앞 구절의 無能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지한 나머지 그렇게 번역하는 듯한데, ‘無能은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의 무능을 가리킵니다. 나의 무능 때문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공자는 莫我知也夫”(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고 탄식한 적도 있습니다.

공자는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 그게 바로 아는 것이지)”라고도 말합니다. 그는 언제나 현실적이고 상대적인 태도를 지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의 그런 태도는 본질이란 것에 집착하는 서구문화권 사람들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면입니다. “過猶不及”(지나침은 못 미침과 마찬가지)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을 계량적으로 측정하지 않고 적절함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不及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공자는 지적 활동의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어떤 대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그 대상을 감성적으로 좋아하는 일만은 못해. 그런데 어떤 대상을 감성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그 대상을 주동적으로 즐기는 일만은 못한 법이야)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멋있는 말입니다. 지적 활동의 궁극은 대상과 하나 되는 것이라는 뜻일 겁니다. 공자가 제자들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은 이처럼 감동을 주는 언어능력에 있지 않았는가 합니다. 그런데 어떤 용감한 사람은 이 문장을 이렇게 설명해버립니다. “세상 알려고 할 것 없어. 즐기는 것이 최고야!”

공자는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지자는 물을 즐기고 인자는 산을 즐긴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김을 누리고 인자는 수를 누린다)(6·23)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 말에서도 는 지식이 많거나 두뇌가 좋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 와 같은 상징어로써 知人仁人을 대비시킨 것이지, 知人仁人의 우열을 말하기 위해 대비시킨 것은 아닙니다. 은 조화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지자는 왜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왜 산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물과 산이라는 상징만을 취한 것이지 물과 산에 어떤 의미를 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을 움직임의 상징으로, 산을 움직이지 않음의 상징으로 택했을 뿐입니다. ‘움직임움직이지 않음’, 곧 양()과 음()은 한자문화권에서 우주를 이해하는 사유 틀입니다. 어느 것이 높거나 낮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계급관념을 가진 사람만이 늘 누가 더 높은지, 무엇이 더 높은 것인지를 따질 따름입니다. 공자는 을 균형 있게 갖추라고 요구했지 어느 것이 가장 높다고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춘추말기부터 활동한 제자백가는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生而知之學而知之를 구분하기도 하고 를 대비하기도 했던 공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짐작합니다. 제자백가는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외부적 요인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내부적 상태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한결같이 엉뚱한 방향으로 귀결시킵니다. 인식주관인 의 상태가 허정(虛靜)해야 한다는 논의로 집중되는 듯하다가, 마지막에는 이니 하는 것에다 귀결시켜 버립니다. 이니 강조한다는 것은 결국 을 휘두르는 군주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추상적 관념을 쌓아나가다가도 결국에는 군주에게로 결말짓는 까닭은 정치권력과 무관한 추상적 사유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어떤 추상적 사유도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사유의 도구는 언어입니다. 언어나 지식은 근본적으로 권력의 구조와 깊은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이 특정 언어나 특정 지식만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이나 사상을 배제하면 추상적 사유나 지식은 발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국가의 번영과 인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권력자에게서 강하게 나오게 됩니다. 그런 권력에 맞서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진정한 철학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정치권력이 워낙 강력하게 사상을 장악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근대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철학과 유사한 것을 중국사에서 찾아서 얽어 놓은 체계일 뿐입니다.